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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한글날에 국립국어원 폐지를 논의하자

If thought corrupts language, language can also corrupt thought.
— George Orwell,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세종대왕의 위대함, 한글의 과학성, 창제 원리와 시기, 창제자가 알려진 세계 유일의 문자… 매년 한글날이 되면 반복되는 이 낡은 레퍼토리. 매번 ‘글자’ 찬양에 그치는 논의의 수준으로 인해 한국인은 문자에 감탄하며 언어를 잊었고, 언어에 감탄하며 사고를 잃었다. 문맹률이 낮은 것은 모두 세종대왕 덕분이라며 기념하던 사람들은 얼마 못 가서 서로 글을 읽지 못한다며 ‘국평오’라며 싸운다. 차라리 문맹률(文盲率)이 아니라 자맹률(字盲率)이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 언제까지 한글날에 ‘한글’이라는 ‘글자’만 이야기할 것인가? ‘한국어’로 하는 언어 생활 전반에 관하여 논의하고 언어 생활 수준 자체를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언어학에는 규범주의(prescriptivism)와 기술주의(descriptivism)라는 오래된 논쟁이 있다. 규범주의란 언어 사용에 옳고 그름이 존재하며, 이를 국가나 기관이 규정하고 언중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기술주의란 언어 사용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으며, 언어는 사회적으로 생성되고 시대에 따라 변하므로 이를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민국의 한국어는 대부분의 국민이 자각하지 못한 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강한 규범주의 아래에 놓여 있다. 국립국어연구원 초대 안병희 원장은 기념사에서 “이제 합리적인 어문정책을 수립하여 국민의 올바른 언어 생활을 계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는데1 이는 처음부터 이 기관의 정책적 목적이 국가주의·관료주의에 기반한 ‘정화’와 ‘통제’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유 국가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국가가 국민의 언어를 계도하겠다’는 문장을 보면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다. 잊힌 자유인의 감각을 되살리는 것. 오늘날 글자의 과학성을 논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영국에는 Received Pronounciation(RP)라는 개념이 있다.2 과거 BBC는 뉴스 진행자에게 RP 발음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거나 기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점차 시대가 흐르면서 BBC는 지역 억양 사용 허용을 확대했고, 오늘날에는 다양한 억양이 뉴스와 방송에 등장한다. RP의 독점 권력을 해체해버린 이 사례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비슷한 것이라도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에서 상상이나 가능한가? 표준어 사정 원칙 1장 1항은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아직도 이 극단적인 규범주의의 경직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언어 생활을 살펴보자. 맞춤법은 대한민국에서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도덕률이다. 심지어 남녀 간의 이상형을 이야기할 때조차 맞춤법과 띄어쓰기 이야기가 등장한다. 경악할 일이다. 언어를 사고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지에서 배운다. 내 언어가 맞는지 틀린지 국립국어원에 문의하고 내용이 아니라 맞춤법을 가지고 싸운다. 정작 내용은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주고 받는다. 전형적인 미셸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 그리고 내면화된 복종이다. 그러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교수마저도 글을 쓸 때 띄어쓰기가 자신 없다고 말한 바 있다.3 국립국어원장도 100% 맞게 쓸 수 없는 맞춤법에 집착하는 사고 구조가 이미 국민 사고에 내면화되었고, 표현의 자유로움과 논리의 정합성, 창의적인 발상보다도 사람들은 형식의 정답에 주목한다. 국립국어원의 극단적인 규범주의는 방송 언어 규제, 교과서 표준어 정책 등을 시작으로 언어의 국유화 과정을 거쳤고, 이것은 사고방식의 위계화와 균질화로 이어졌다. 스마트폰을 똑똑손전화로, 헬스클럽을 건강방으로 사용하자는 국립국어원의 ‘언어 순수주의’ 주장을 보고 있을 때면 남한의 기관인지 북한의 기관인지마저 헷갈린다. 실제로 이런 언어 통제 정책은 공산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이니 그도 그럴 수밖에.

언젠가 친구가 왜 튀르키예라고 부르지 않고 터키라고 부르느냐고 하는 것을 듣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다. 현 국립국어원의 행태와 한국인의 언어 생활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잔재일 뿐이다. 언어를 국가주의적 통제 시스템으로 다루며 옳고 그름에 집착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국민들의 사고방식 또한 이에 적응하고 비판적 사고의 토양이 약화된 것이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생각이 아니라 맞춤법이 옳기를 바라는 사회, 틀린 말을 잡아내는 것이 이긴 말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억양, 맞춤법, 어투를 가지고 논쟁하고, 논리가 아니라 표현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언어 생활을 멈추자. 한글날을 문자 찬양의 날, 세종대왕의 날로만 소비하는 것을 멈추자. 한글날 때문에 훌륭한 언어 생활과 자유로운 사고가 발전하는 것을 망치지 말자. 언어 주권은 국립국어원 따위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발화와 사고 안에 있으니까.

Footnotes

  1.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연구원 설립 경위”, 국립국어연구원 10년사, 열람 2025년 10월 10일, https://www.korean.go.kr/niklintro/10years04_01_02.jsp.

  2. Wikipedia, “Received Pronunciation”,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October 7, 2025, https://en.wikipedia.org/wiki/Received_Pronunciation.

  3. 유석재, “前 국립국어원장의 고백 ‘띄어쓰기, 나도 자신 없다’” 조선일보, 2013년 5월 21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21/2013052103173.html.